(3) 매직 마자르 MM 시스템 - 포지션 체인지, 그리고 지역방어

 

  메토도 시스템, WM 시스템, 베로우어 시스템으로 수비 전술이 발전하면서 대인 방어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점을 간파하고, 다시 공격 축구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을 이끌던 헝가리인 구스타프 세베스(Gustav Sebes) 감독이었죠.

 

  1953 11 25일 잉글랜드 런던에 위치한 웸블리(Wembly) 경기장에서 잉글랜드 대표팀과 헝가리 대표팀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웸블리 경기장인 지금까지도 축구의 성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잉글랜드인들에겐 큰 자부심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대표팀 또한 웸블리에선 타 국가 대표팀에게 여태까지 진 적이 한 번도 없었죠.

 

페렌츠 푸스카스.jpg 

<지금 헝가리는 축구 변방으로 여겨지지만, 한때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호령한 적이 있었다. 그 중심에 바로 페렌츠 푸스카스가 있었다. 악마의 왼발이라 불렸던 그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8년 동안 182경기 157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헝가리 대표팀에선 85경기 84골을 득점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를 기려 피파는 피파 선정 올해의 골 (FIFA Goal of the Year award)을 푸스카스 상(FIFA Puskás Award)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 남아있는 악마의 왼발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ás) 2골에 힘입어 헝가리 대표팀은 잉글랜드 대표팀에게 6:3이란 치욕적인 대패를 안겨줍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홈 무패 신화가 헝가리에게 대패로 깨진 이 대이변을 헝가리안 랩소디(Hungarian Rhapsody)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당대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죠.

 

  잉글랜드 대표팀은 부다페스트 원정 경기에서 복수를 노렸지만 7:1 대패를 또 다시 당하며 좌절하고 맙니다. 헝가리안 랩소디 사건으로 헝가리 대표팀은 그 위용을 전 세계에 떨쳤으며, 매직 마자르 (Magic Magyar)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매직 마자르를 이끈 것은 구스타프 세베스 감독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자르는 헝가리 인구 대다수를 구성한 유목민 마자르족을 의미하며, 뛰어난 기마술을 가지고 있었죠.)

 

구스타프 세베스.jpg 매직 마자르.jpg

<축구 전술의 판도를 바꾸고, 매직 마자르를 이끌었던 구스타프 세베스 감독. 그리고 그의 군단 매직 마자르의 사진>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한 매직 마자르는 승승장구하며 결승에서 제프 헤르베르거(Sepp Herberger) 감독이 이끄는 서독 대표팀을 만나게 됩니다. (이 때 갖은 고생 끝에 참가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대표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컨디션을 추스를 틈도 없이 헝가리 대표팀에 9:0 대패를 당했습니다.ㅠㅠ) 그러나 푸스카스의 결장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군대식 조직력과 뛰어난 플레이메이커 프리츠 발터(Fritz Walter)를 앞세운 서독 대표팀에게 2:3 역전패로 준우승에 머뭅니다. 강력한 우승 후보 매직 마자르를 꺾은 서독의 우승을 베른의 기적으로 칭할 정도로 대이변이었죠. 그러나 매직 마자르가 불러일으킨 새 바람은 전 세계를 강타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구스타프 세베스 감독은 어떠한 전술로 헝가리 대표팀을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세운 것일까요?

 

  헝가리의 클럽 MTK 감독 마튼 부코비(Márton Bukovi)는 팀 주전 공격수 호플링이 부상당하자, 측면 공격수였던 팔로타스를 센터 포워드로 위치시킵니다. MTK 역시 WM 시스템을 활용하던 팀이었죠. 하지만 팔로타스는 평소 자신의 플레이처럼 공격진의 바로 뒤에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최전방에만 머무르지 않고 윙 포워드처럼 이리저리 활동한 것이었죠. 이를 본 세베스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센터 포워드)를 인사이드 포워드들보다 아래로 내려 보내면서 공격수들 또한 M자 대형을 갖추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베스 감독의 MM 시스템입니다.

 

매직 마자르의 MM 시스템.jpg 

<이것이 바로 매직 마자르의 무기, MM 시스템이다. WM 시스템과 다르게 센터 포워드 위치가 아래로 내려와 있는데,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부분이 가장 큰 차이를 낳았다.>

 

매직 마자르 히데구티 활용.jpg 

  세베스 감독은 센터 포워드 히데구티를 단순히 고정하지 않고, 팔로타스가 뛴 것처럼 인사이드 포워드들보다 아래로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히데구티를 대인 방어하는 수비수가 따라 나오게 되면서, 수비진에 공간이 생깁니다. 이 틈새를 인사이드 포워드 푸스카스와 코치슈, 윙 포워드 치보르와 부다이가 침투한 것이었죠. 여기에 공격수들이 정해진 위치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거나 서로 위치를 바꾼 뒤 침투하도록 유연성을 부여하였습니다.

 

포지션 체인지1.jpg 포지션 체인지2.jpg 포지션 체인지3.jpg 

  유연성을 부여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사례를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상대 팀 수비수 A, B, C, D, E는 각각 헝가 대표팀의 공격수 5명을 대인 방어하게 됩니다. 여기서 치보르와 부다이의 위치를 서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 둘을 맡은 A E 역시 서로 위치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치보르가 다시 안쪽의 푸스카스와 위치를 바꾸면, 치보르를 맡게 된 A B와 다시 위치를 바꿔야 하는 복잡한 동선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게다가 헝가리 대표팀의 공격수들은 좋은 호흡과 개인기를 갖추고 있어, 수비가 혼란에 빠지면서 생기는 공간을 단숨에 치고 들어갈 수 있었죠. 이것이 바로 포지션 체인지이며, 대인 방어 체계의 동선을 꼬아버려 그 틈을 노리기에 적합한 전술이었죠.

 

  결국, 공격수에게 무조건 따라 붙어 일대일 수비를 하는 상대 수비진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수비 대형이 흐트러지며 침투할 공간을 내주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자신의 위치에 고정되지 않고, 위치를 바꿈으로써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침투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바로 현대 축구에서 수비를 무너뜨리고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쓰이는 전술 포지션 체인지의 시초입니다. 이 포지션 체인지는 간단해 보이지만, 당시 수비 전술의 주류였던 대인 방어를 깨뜨리기에 충분했죠.

 

  여기에 최고의 공격수 푸스카스, 비장의 무기이자 최초의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평가 받는 히데구티와 그 동료들을 갖췄기에 포지션 체인지를 앞세운 매직 마자르는 대인 방어 체계를 붕괴시켜버렸습니다. 단순히 정해진 위치에서 개인 기량에 의존하지 않고, 포지션 체인지로 다양한 움직임을 불어넣어 공간을 창출해내도록 한 것이죠. 그래서 세베스 감독에 의해 축구에서의 공간의 개념이 등장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세베스 감독의 전술 고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MM 시스템과 포지션 체인지를 분명 다른 팀들이 따라 할 것이고, 그에 맞춰 대비책을 세울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세베스 감독은 벨라 구트만(Béla Guttmann) 감독 등 헝가리 지도자들과 함께 '지역 방어'의 개념을 새로이 정착시킵니다.

 

  WM 시스템까지 수비 전술은 사람을 따라다니는 일대일 수비, 즉 대인 방어에 기초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를 역이용, 수비수를 끌어내어 침투할 공간을 만들어내기 쉬웠습니다. 또한, 공격수들이 서로 위치를 바꾸면 그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수비 진형이 흐트러지기도 쉬웠죠.

 

지역 방어.jpg 

  반대로 지역 방어는 사람이 사람을 맡지 않고, 오직 지역을 맡는 것이죠. , 한 사람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담당한 지역에 들어오는 선수를 방어하는 것이죠. 이러한 지역 방어의 도입으로 포지션 체인지로 인해 수비 진형이 흐트러지지 않는 결과를 낳았죠. 공격수들이 포지션을 바꾼다 해도, 자신의 지역을 지키며 자신이 담당한 지역으로 들어오는 선수만 막으면 되니까요. 따라서 상대가 포지션 체인지하여도 따라 나가지 않아 공간을 내주지 않았고, 수비 진형까지 지킬 수 있었죠.

 

  세베스 감독은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을 이끌며 세계만 제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WM 시스템의 대인 방어에 기반을 둔 수비 축구가 주류를 이루던 축구 전술 계에 MM 시스템을 이용한 공격 축구의 바람을 다시 불러일으켰죠. 그리고 포지션 체인지와 지역 방어를 고안하여 공간의 개념까지 최초로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활용하는 개념은 현대 축구로까지 이어지게 되어 다양한 전술들이 나오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공격 축구와 수비 축구가 발전하면서, 축구 전술의 발전은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 발전의 속도를 높인 것은 바로 남미 대륙의 떠오르는 강호, 브라질과 유럽 축구 선진국 이탈리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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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은 2013.11.01 15:19
    일단 닥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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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진 2013.11.01 18:51
    이제 바꾸렵니다 맨날 쳐다만보고 댓글도 안달고 추천도 안날리고해서 이제 표현을 확실히 해야겠어요ㅋㅋ 항상 수고가 많습니다 덕분에 오늘도 좋은정보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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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현 2013.11.01 19:58
    선리플 후구독! 항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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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균 2013.11.01 20:05
    재원이 이런거 어케 다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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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규 2013.11.04 19:27
    나중에는 모아서 한꺼번에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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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익재 2014.01.11 10:00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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