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 수비형 미드필더의 등장과 역할
4열 포메이션과 함께 등장한 공격형 미드필더의 활약은 수비 입장에서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3열 포메이션 상 미드필더와 수비진 사이 공간에서 위협적인 패스와 돌파로 골문을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선수들을 막아주고, 나아가 수비진을 보호해줄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점차 수비 전술의 중심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기존의 3열 포메이션의 약점인 미드필더 – 수비수 사이의 ‘사이 공간’을 장악하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이 위치에서 4백 라인을 보호하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주로 상대 공격수의 공을 빼앗거나 전진을 막고, 상대의 패스를 끊어줍니다. 그러니 정확한 수비 능력과 위치 선정이 필요한 건 당연하겠죠?
수비형 미드필더는 수비진을 보호하는 저지선이기 때문에, 수비 실수를 하면 바로 수비진이 위협 받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끊을 때 끊어주고, 물러날 때 물러나는 등 효율적으로 수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측면 수비의 오버래핑으로 측면 수비 자리가 비었을 때 상대 공격이 들어오는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가 그 빈 공간을 맡아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비의 빈 공간을 직접 채우는 것을 커버링(covering)이라고 하죠. 혹은 양 측면 수비수들이 같이 오버래핑할 때 수비형 미드필더 1명이 수비진과 함께 3백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비형 미드필더는 수비 전술에 쓰임새가 많습니다. 후자처럼 수비형 미드필더가 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주 중앙 수비수들과 3백을 구성하는 것을 ‘포어 리베로’(Fore Libero) 역할이라고 합니다. (포어 리베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5월 8일 오리지날 클라시코 리뷰에 있지만, 스위퍼 편에서 한 번 더 다루겠습니다.)
<홀딩 플레이(holding play)의 대표적인 2가지 예>
만일 상대 공격수들이 공을 가진 수비수들을 압박하면, 수비수들에게서 공을 건네받아 공을 보호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압박을 당하면 주변 동료에게 패스하여 전방 압박을 무력화시키기도 하죠. 이렇게 수비진과 공을 주고받는 플레이를 홀딩 플레이(holding play)라고 합니다. 상대 공격수들이 공을 가진 수비수들에게 ‘전방 압박’을 할 때 유용한 플레이죠. 수비 지역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빌드업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며 더불어 상대에게 공을 빼앗겨 기회를 내주는 것을 방지할 수 있죠.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단순히 수비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비수들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수비수들에게서 가장 먼저 패스를 받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비수들에게 공을 받은 뒤, 직접 측면이나 중앙으로 패스해 빌드업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 전술과 역할에 따라, 빌드업 과정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수비만 맡는 것이 아니라, 공격 전개에서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이죠. 이는 플레이메이커 판도 변화, 복수의 플레이메이커 등 현대 축구 판도의 변화와 관련이 깊죠.
이처럼 수비형 미드필더도 부가적인 임무에 따라 유형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2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마케렐레 롤과 쿠르소레
<170cm라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불리한 조건을 뛰어넘은 클로드 마케렐레. 그는 프랑스 대표팀, 레알 마드리드, 첼시 등에서 수비의 대들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마케렐레 롤을 축구 전술사에 남기게 된다.>
클로드 마케렐레(Claude Makelele)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입니다. 170cm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마케렐레는 은퇴한 지금도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회자하고 있습니다. 그가 떠난 이후 초호화 스타 군단이었던 ‘1기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가 휘청거렸을 정도니깐요. 그리고 지금도 많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우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케렐레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여전히 꼽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탁월한 위치 선정, 엄청난 활동량에 바탕을 둔 수비력이었죠. 마케렐레가 작은 키란 약점을 뛰어난 위치 선정으로 커버하였습니다. 공중볼이 어디 떨어질지 예측하고 먼저 자리를 잡아 먼저 따내는 것입니다. 혹은 상대의 패스 방향을 예측하여 먼저 끊어버리곤 했죠.
그리고 마케렐레는 혼자서 엄청난 공간을 뛰어다닐 수 있는 활동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확한 짧은 패스를 장착하여 공을 끊어내면 바로 동료들에게 패스하여 공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빌드업에 직접 관련하기보단 더욱 잘해낼 수 있는 동료에게 빌드업을 하게끔 도와주는 역할이었죠.
이처럼 마케렐레는 동료들이 수비 부담 없이 공격에 전념하도록 궂은일을 도맡았습니다. 그래서 수비에만 전념해 수비진을 보호하고, 동료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마케렐레 롤’(Makelele Role)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마케렐레 롤은 수비에 중점을 두면서 상대에게서 공을 따내는 ‘볼 위닝’(ball winning)이 가장 중요한 임무죠. 그리고 짧은 패스로 더 패스 전개가 좋은 선수들에게 공격 전개를 하게 도와줍니다.
이와 비슷한 용어가 이탈리아에도 있습니다. 인테르디도레(Interdittore)라는 용어입니다. 이 유형의 선수들도 마케렐레 롤과 비슷하게 수비를 가장 우선시합니다. 하지만 마케렐레 롤이란 용어가 더 유명하고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쿠르소레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젠나로 가투소(Gennaro Gattuso)와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 가투소는 린기오(Ringio, 짐승 소리란 뜻), 다비즈는 싸움닭이란 별명이 있는데, 그만큼 둘 다 상당히 투쟁적이고 거친, 그리고 활발한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모두가 마케렐레 롤은 아니며, 무조건 수비에 전념하는 것은 아니었죠. 어느 정도 공격 가담을 하되, 공격 위치에서 먼저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들도 있죠. 이러한 유형을 이탈리아 용어로 쿠르소레(Cursore)라고 합니다. 유명한 선수로는 젠나로 가투소, 에드가 다비즈가 있습니다. 이 선수들은 상대를 다그치는 수비력과 녹록지 않은 공격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죠. 1차적으로 수비에 열중하다가, 때때로 틈이 나면 공격에 가담하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BTB와 비슷해보이지만, BTB보다 더 수비적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위치상 중앙 미드필더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주 임무가 수비이기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분류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가투소 같은 경우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분류되고 있고요. 결국 쿠르소레는 마케렐레 롤보다 위에 위치, 공격 가담이 더 많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셔도 되겠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와 과격함으로 터프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
그러나 마케렐레 롤이나 인테르디도레와 같은 유형의 선수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그 이유는 수비 지역에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입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들도 단순히 공을 잘 뺏는 것이 아닌, 정확한 패스와 공격 방향의 기초를 잡아줄 수 있는 시야 등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공격에 단순 가담하는 쿠르소레와 달리 하나의 플레이메이커가 될 필요가 생긴 것이죠. 그리하여 대두한 것이 후방 플레이메이커입니다.
- 후방 플레이메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부분에서 언급했듯, 수비형 미드필더가 등장한 후 본래 플레이메이커를 맡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봉쇄되기시작하죠. 그래서 공격형 미드필더들만 플레이메이커를 맡지 않게 되고, 플레이메이커를 하나만 두지 않고 여럿을 두는 변화가생겨났습니다.
그중 역발상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보다 더 뒤에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기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후방 플레이메이커라고 부릅니다. 정확한 영어 명칭은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Deep-lying Playmaker)이며, 비슷한 의미의 이탈리아어로는 ‘레지스타’(Regista, 연출가라는 뜻)가 있죠.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는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보다 더 뒤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압박을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됩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만큼 시야가 더 넓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경기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상대의 빈틈이 어딘지 볼 수가 있죠. 후방 플레이메이커는 이 점을 활용한 것입니다.
수비진에서 상대 패널티 박스까지 공을 보내는 ‘빌드업’은 공격 전개 과정을 말합니다. 빌드업에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공격을 전개하느냐에 따라 공격이 달라지죠. 패스 한 번에 측면과 중앙 중 어디로 전개하느냐, 곧바로 길게 공격진에 전달할지 미드필더를 거쳐 차근차근 나아갈지 달라지죠. 또한, 수비수들과 가까워 공을 건네받기 수월해, 빌드업을 하는 데 있어 미드필더와의 ‘연결 고리’가 되기도 용이했습니다.
후방 플레이메이커는 이런 빌드업의 기초를 만들어줍니다. 일단 뒤에 위치해있어 상대 진영을 잘 살펴볼 수 있죠. 즉, 더 큰 그림에서 공격 전개를 어떻게 할지 판단하기가 더 수월합니다. 그래서 공격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경기를 ‘조율’한다는 표현에 어울리죠.
따라서 후방 플레이메이커는 뒤에서 패스로 공격 방향을 정해줍니다. 위치가 뒤에 있기 때문에 주로 롱패스로 공격 방향을 만들어줍니다. 롱패스 한 방으로 길게 측면 공격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죠.
<현 ‘레지스타’의 대명사 안드레아 피를로. 본래 AC 밀란 소속이었으나 11-12 시즌 유벤투스로 이적, 많은 나이에도 여전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적 당시 AC 밀란 감독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Massimiliano Allegri)는 ‘피를로의 유벤투스 이적이 세리에A의 판도를 바꿨다’라고 할 만큼 핵심적인 선수다. 대지를 가르는 킬 패스와 무회전 프리킥이 그의 주무기이다.>
이러한 롱패스를 통한 측면 공격 전개는 이탈리아형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레지스타’들의 주특기입니다. 현재 레지스타의 대명사인 안드레아 피를로(Andrea Pirlo).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들에 대한 압박 전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탈압박이 뛰어나지 못했던 피를로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당시 소속팀 AC 밀란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현 레알 마드리드 감독)는 피를로의 재능을 살리기 위한 선택을 하죠. 바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위치를 옮겨 레지스타로 거듭나게 한 것입니다. 레지스타 임무를 맡은 피를로는 든든한 AC 밀란의 미드필더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세계 최고의 레지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피를로의 주특기는 롱패스를 통한 공격 방향 설정입니다. 후방에 처져 있는 피를로는 정확한 롱패스로 전방에 전달합니다. 그래서 피를로의 롱패스에 따라 팀의 공격 방향이 정해지게 되는 것이죠. 왜냐면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피를로가 뒤에서 상대의 빈틈을 향해 롱패스를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즉, 공격 방향의 큰 그림을 피를로가 그리면, 그에 맞춰 팀 공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지스타를 흔히 지휘자, 조율사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피를로도 비슷한 의미의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경기를 잘 조율할 수 있도록 뒤에서 경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한 건 당연한 이야기겠죠?
더불어 피를로는 상대 선수들을 넋 놓게 하는 킬 패스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흔히 ‘대지를 가르는 킬 패스’라고도 하죠. 그리고상대 전방 압박을 떨칠 수 있는 테크닉과 강력한 무회전 슛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직접 오버래핑해서 중거리슛을 날리거나, 프리킥으로 골을 뽑아내기도 하죠. (요즘은 사진과 다르게 수염을 많이 길러서 노숙자 스타일로 변신.)
(피를로의 스페셜. 공을 좀 길게 찬다 싶으면 바로 피를로입니다.)
(피를로의 11-12 시즌 패스 모음집. 이처럼 피를로는 정확한 패스로 공격 방향을 설정해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레지스타와 같은 후방 플레이메이커 유형 선수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 중에선 최근 회춘했단 평가를 받고 있는 김남일 선수가 대표적입니다. ‘진공 청소기’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끈질기고 거친 수비형 미드필더 이미지가 강한데요, 사실 김남일은 정확한 롱패스도 가지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박지성의 선취골을 롱패스로 어시스트해주기도 했습니다. 현재 인천에서 주장을 맡으며, 구본상과 함께 노련한 수비와 정확한 롱패스로 인천의상승세를 이끌고 있습니다.
(회춘한 김남일 한 경기 스페셜)
안양에선 정다슬 선수가 레지스타 비슷한 역할을 많이 해줍니다. 최진수, 박정식, 정재용 등 파트너들이 공격 가담하면 혼자 4백 라인과 많이 떨어지지 않고 수비에 치중하죠. 대신 스루 패스와 롱패스로 빌드업을 도와주고, 수비진과의 홀딩 플레이로 공격 흐름을 조율까지 해줍니다. 중앙 미드필더들을 통해 공격의 기초를 전개하는 안양에 있어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잘 해주고 있죠.
이들과 같은 이탈리아식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레지스타’는 주로 롱패스를 활용합니다. 뒤에 위치하여 공격진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격을 위한 전진이 막히면, 레지스타에게 공을 전달하고 롱패스로 생기는 틈에 바로 찌르는 식으로 활용합니다. 양 윙백의 공격력을 활용하는 이탈리아, 양 윙어의 폭발적인 돌파를 활용한 역습의 인천, 좌우에서부터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가는 안양 모두 레지스타 유형의 선수들의 롱패스로 공격을 전개합니다.
(레지스타라는 용어는 주로 이탈리아 쪽 선수나 팀들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는 더 큰 범위의 단어죠.)
하지만 피를로는 후방에 위치해서 수비와 빌드업을 모두 맡아야 했기 때문에 수비 임무에 치중하기 힘들단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다수 후방 플레이메이커들의 문제였죠. 따라서 수비를 도와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죠.
AC 밀란 시절엔 젠나로 가투소가, 지금 소속팀인 유벤투스에선 BTB로 언급했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와 또 다른 파트너 아르투르 비달(Artur Vidal)이 그 역할을 해줍니다. 가투소와 마르키시오는 준수한 수비력과 공수를 넘나들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죠. 마르키시오와 함께 유벤투스의 중원을 구성하는 비달 또한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피를로를 보조해주고 있죠. 특히 가투소는 피를로와 영혼의 파트너와 불릴 정도로 엄청난 호흡을 과시했죠. 또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가투소는 피를로의 테크닉을, 피를로는 가투소의 수비 능력을 본받기도 하였단 일화가 있습니다.
이는 위에 예를 든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천의 김남일에겐 구본상이, 안양의 정다슬에겐 최진수와 박정식 등이 있죠.
그러나 롱패스를 주로 활용하는 레지스타 말고 짧은 패스를 주력으로 활용하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도 있습니다. 바로 바르셀로나의 세르히오 부스케츠(Sergio Busquets)와 같은 유형의 선수들을 말하죠.
바르셀로나는 짧은 패스로 점유율을 극대화하는 ‘티키타카’ 축구를 구사합니다. 따라서 바르셀로나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수비진에서 공을 받아 미드필더들에게 짧은 패스를 정확히 해줘야 합니다. 부스케츠는 이 역할을 잘 수행해주고 있습니다. 준수한 테크닉으로 홀딩 플레이를 잘 해주면서 이니에스타 – 사비와도 계속 패스를 주고받습니다. 미드필더 지역과 수비 지역에서 패스가 오갈 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죠. 또한, 레지스타 유형과 다르게 빌드업에 대한 부담이 적어, 4백 라인을 보호하는 원래 임무에 더 충실합니다.
비단 부스케츠 뿐만 아니더라도 롱패스를 잘 못 해도, 정확한 짧은 패스로 무장한 후방 플레이메이커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패스 능력이 좋다면 수비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하기도 합니다. 대신 BTB 유형의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력이 좋은 파트너를 붙여주는 것으로 보충해줍니다.
또한 수비 성향의 중앙 미드필더들도 경우에 따라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소화합니다. 예로 언급했던 사비 알론소가 대표적이죠. 이는 팀의 전술에 따라 의미 부여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무조건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수비형 미드필더만이 맡는 것이 아니라, 팀에서 가장 뒤에 쳐진 중앙 미드필더가 역할을 맡기도 한다고 보셔도 됩니다.
- 수비형 미드필더의 전술적 쓰임새
수비형 미드필더의 전술적 쓰임새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1명 두느냐, 2명 두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때 수비형 미드필더를 지칭하는 단어로 ‘자동차 핸들’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인 볼란테(Volante)라는 단어가 많이 쓰입니다. 1명을 두면 원 볼란테, 2명을 두면 투 볼란테, 혹은 더블 볼란테라고 합니다.
(원래 볼란테라는 개념이 브라질에서 나왔는데,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다 보니 포르투갈어로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유래는 브라질인 것을 잊지 마세요.)
원 볼란테는 가장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보통은 중앙 미드필더 2명과 함께 셋이서 역삼각형 대형을 이룹니다. 이 역삼각형 대형을 스페인어로 트리보테(Trivote)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수비형 미드필더가 한 명이라 수비가 좀 약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 볼란테의 수비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앞에 있는 2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함께 중원을 장악하기 때문이죠. 2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우선 수비를 해주면 원 볼란테가 그 뒤를 받쳐주는 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즉, 중앙 미드필더가 수비하느라 생긴 빈 공간을 원 볼란테가 막아주는 식이죠.
그리고 이 원 볼란테에 어떤 유형의 선수를 두느냐에 따라 활용도 다양합니다. 마케렐레 롤이나 쿠르소레로 두어 짧은 패스로2명의 중앙 미드필더에 전달, 이 둘이 공격 전개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니면 후방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를 배치, 공을 따내는 즉시 공격을 전개하도록 할 수도 있죠. 이때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빌드업에 대한 부담을 덜 수가 있죠. 이것은 보유한 선수들의 유형, 팀 전술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각광 받고 있는 후방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들이 원 볼란테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원 볼란테는 중앙 미드필더 2명을 두어 자유롭게 공수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많은 포메이션들이 원 볼란테를 둔 역삼각형 편대인 트리보테 조합으로 중원을 구성합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더블 피보테로 구성되는 삼각형 편대도 수비 상황엔 트리보테로 변하는 등 수비 전술에 자주 쓰입니다.
투 볼란테는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둡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중원과 수비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그리고 측면 수비까지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각자 맡은 측면으로 빠져 풀백의 오버래핑, 측면 미드필더의 늦은 수비 가담으로 생기는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모두 끈질긴 압박과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4백 라인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명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빠지는 만큼, 공격 시 숫자가 부족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통은 마케렐레 롤 1명, 후방 플레이메이커 1명으로 구성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 명만 적극 공격 가담시켜 일시적으로 ‘트리보테’로 변화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혹은 투 볼란테를 수비형 미드필더들만이 아닌 수비 성향 중앙 미드필더나 BTB로 채워 더블 피보테 화(化)하는 것이 최근 추세입니다.
투 볼란테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계기는 아드보카드 감독이 이끄는 2006년 독일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김남일 – 이호의 기용이었습니다. (이 당시 언론을 통해 보란치라고 소개됐는데, 정확한 발음은 볼란테가 맞습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더블 볼란테 위에 박지성을 배치, 박지성의 활동량을 활용했습니다. 박지성이 투 볼란테와 같이 수비를 해주면, 압박 등이 좋은 김남일이나 이호가 공을 따냅니다. 그럼 이 둘은 측면으로 바로 공을 보내주었습니다. 아니면 박지성에게 전달, 박지성이 공격을 이끌 수 있게 해주었죠. 이 덕에 한국은 수비에 안정감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경기 운영이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간다는 문제가 있었죠. 하지만 박지성의 왕성한 활동량과 더블 볼란테의 롱패스를 받은 윙 포워들의 빠른 역습 등을 이용해 공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볼 수 있었던 프랑스 대표팀 최고의 중원 조합. 왼쪽부터 지네딘 지단, 패트릭 비에이라, 클로드 마케렐레. 하지만 이 조합은 수비력이 좋지 않은 지단의 뒤를 든든히 받쳐준 비에이라 – 마케렐레의 투 볼란테가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대표팀은 준우승의 쾌거를 이룩하였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프랑스 대표팀의 패트릭 비에이라(Patrick Vieira) – 클로드 마케렐레 투 볼란테도 빼놓을 수 없죠. 마케렐레는 자신의 이름을 딴 마케렐레 롤로, 공격과 수비 모두 만능이었던 비에이라는 수비에 치중하는 BTB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마케렐레가 공을 따면 바로 비에이라에게 패스, 비에이라는 바로 공격진에 연결할 수 있었죠. 혹은 비에이라가 공격진까지 진출, 직접 득점에 관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수비 가담이나 수비력이 좋지 않은 지단이 마음 놓고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것은 이 투 볼란테 덕분이었죠. 이 투 볼란테와 지단이 같이 뛰었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은 당시 내분 등 악재에도 준우승이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